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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5 하계내일로

[2015하계내일로_안동2]병산서원,하회마을(엄행당,북촌댁,삼신당,양진당,충효당,영모각,유물전시관), 부용대(옥연정사,화천서원)












게스트하우스 입구에서 어제 탔던 그 봉고차를 타고 오후투어를 시작했다.

 

오후투어의 코스는 병산서원 - 하회마을(부용대)

사실 위 코스는 버스를 이용해서 구경 할 수도 있는데,

 

버스시간때문에 쫓기는 일 없이 여유롭게 구경하고 싶어서 투어를 신청했다.

 

(버스를 이용 할 경우, 병산서원을 가는 버스는 딱 3타임밖에 없고,


가더라도 20-30분만에 후딱 구경을 하고 나와야 한다.


놓칠경우 한참을 기다려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다.)



 

출발하기 전, 사장님께서 하회마을에서 부용대 가는방법으로 '자동차 / 나룻배'

 

두가지가 있는데, 그 중 어떠한 방법을 택하겠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룻배를 타고 가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서 나룻배를 선택했다.












서애 류성룡이 선조 8년에 지금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운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 뒤 1614년에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판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으며, 철종 14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언과 사당 중 하나이다.











햇빛 쨍쨍한 병산서원 도착.

 

위는 파랗고 사방은 푸르러서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복례문'

 

'자기를 낮추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이다'라는 유학의 자기절제 정신을 표현해 둔 문으로

 

우쭐해하지말고 겸손한마음으로 들어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너무 길어서 제대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복례문을 지나면 만대루가 보인다.

 

만대루를 조금 더 지나쳤을 때, 다시 뒤돌아 풍경과 함께 보는 것이 정말 일품이다.

 

만대루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기어코 신발벗고 올라서 책을 읽고있는 아저씨 두분이 계셨다.


























만대루를 지나 '입교당'으로 갔다.

 

입교당은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라는 의미로 서원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강당이다.

 

강학당으로 가운데로 동쪽의 명성재, 서쪽의 경의재로 나뉘고

 

툇마루가 마련된 명성재에는 서원의 원장이 기거


서쪽의 경의재는 오늘날 교무실에 해당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입교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마주하고 있는 '동재와 서재'

 

유생들의 기숙사로 두 건물은 똑같이 크고 작은 2개의 방과 가운데 1칸 마루로 구성.

 

강당쪽 작은 방은 학생회장격인 유사의 독방 혹은 서적을 보관하는 장서실.

 

좌고우저의 원리를 따라 동재에는 상급생. 서재에는 하급생들이 기거하였다고 한다.


























입교당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신문'

 

서원의 내삼문에 해당. 향사때에 제관들이 출입하였다고 한다.

 

정면 3칸의 문에는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있다.

 

향사례때, 집례를 맡은 임원들만이 신문 안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일반 학생들은 앞마당에서 참관해야했다고 한다.






 





















신문 앞에서 뒤돌면 바로 보이는 작은 쪽문 '정사청' 으로 가는 길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는 곳으로 본래 사당과 한 울타리 안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병산서원은 전사청과 사당이 각각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진사청을 지나가면 바로 보이는 '달팽이 뒷간'

 

출입문을 달아 놓지 않아도 밖에서 보이지 않게 만든 것으로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한다.

 

고타야 사장님말로는 볼일보다가 부르면 뛰어나가야 되니깐 지붕, 문 다 없는거라고ㅋㅋㅋㅋㅋㅋ





 

 





















구경을 마치고 나왔더니, 입구쪽이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초록색과 하얀색 그리고 파란색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병산서원에서 여유롭게 머물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였다


라는 후기를 많이 보았는데왜 그런 후기를 남겼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실 버스시간에 쫓긴다면 20~30분내에 후다닥 구경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느낀 그 기분을 즐기기는 힘들거 같았다.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외가와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과 임진왜란 떄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 마을 이름을 하회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 주차장에서 하차 후, 매표소를 향해 걸어갔다.

TIP. 주차장 하차 매표소에서 티켓구매 셔틀버스타고 하회마을





 

 




















하회마을은 그늘이 없어서 선크림, 선글라스, 모자 등등이 필수였다.

 

고타야 사장님께서 하얀색 우산을 빌려주셨는데,

 

햇빛이 흰색을 뚫고 들어와서.....또르륵....

 

TIP. 그늘이 없다. 선크림, 선글라스, 모자 등등 필수


























아무튼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하러 갔는데눈에 띄는 공지.

 

'메르스로 인하여 당분간 하회별신굿 공연이 취소'

 

하회별신굿 보러 하회마을을 온거였는데........

 

TIP. 메르스여파로 인해 하회별신굿 당분간 취소.

하회별신굿 때문에 하회마을을 가는 거라면

공연 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가기.






 




















눈물을 머금고 분홍색 셔틀버스를 탑승.


























셔틀버스에서 내려 들어가면, 가장 먼저 입구에 전동차를 대여하는 곳이 보인다.

 

더위에 잘 지치는 사람이라면 전동차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돈도 없고, 걸어가며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에 도보를 선택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부분은 사방이 논이었다.

 

논을 바라보며 '... 이번주 주말에 울 할미 자두따러 가야되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TIP.입구에 전동차를 대여하는 곳이 있다. 1시간 15000






 

 

 




















하회마을은 꼼꼼히 살펴보면 반나절이 걸린다는 후기를 보았었는데,

 

나는 고타야에서 준 지도를 통해 둘러보았다.

 

염행당(남촌댁) - 주일재 - 북촌댁 - 삼신당 - 양진당 - 충효당 - 영모각 - 작천고택 - 빈연정사 - 원지정사 - 부용대

 

 

 

 

가장 처음으로 본 고택. 


나무결이 너무 예뻤다.


























집들이 정말 너무너무 예뻤다.

 

흙을 이용한 돌담도 너무 예쁘고,

 

풍경도 예쁘고, 나무도 예쁘고,

 

전부 다 예뻤다.


























여기가 번남고택 찻집인듯 했다.

 

고타야 숙박객이거나 투어 참가자에게 1000원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찻집을 지나 있는 버스정류장!

 

안동역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매표소쪽 마을입구 정류장으로 가지말고,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하회마을 구경 후, 병산서원으로 간다면 이곳이 아닌 매표소쪽 마을입구 정류장으로 가야한다.)


























집들이 다 멋있어서 개떡같이 찍어도 찰떡같이 나온다.

 

너무 좋아.






 

 

 

 

 

 

 

 




















여기가 삼신당(신목)으로 가는 골목.

 

지도를 보면서 갔는데도 이상한 길로 가서 한참을 헤매다가 갔다.

 

쉽게 지나치게되는 골목이어서 헤매는 사람이 몇 있었다.

 

TIP. 삼신당으로 가는 골목은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있다.

삼신당을 간다면 주의 깊게 살펴보기

 





 

 





















좁을 골목을 지나가면 커다란 나무가 뻥 하고 나타난다.

 

구석에서 소원을 적을 수 있는 종이와 펜이 준비되어 있다.

 

나도 몇 글자 끄적이고 마음을 담아 묶었다.






 





















삼신당 주변에 새끼줄같은걸로 울타리가 되어있다.

 

우리의 소원을 적은 종이는 이 울타리에 묶어야 한다.

 

이 글을 보고, 삼신당을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제발. 나무는 건들이 않았으면 좋겠다.

 

TIP. 소원은 나무 주변에 쳐있는 새끼줄 울타리에 묶는다.

절대 나무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몸체에 절대 손대지 말라는 문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새끼줄 울타리를 넘어 삼신당 나무에 소원을 묶는 사람이 꽤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양진당'




풍산 류씨의 대종가.

사랑채에 걸려있는 '입암고택'이라는 현판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 선생을 지칭.

입암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양진당이라고 부른다.

사랑채는 고려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이조건축양식으로서 고려양식과 이조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커다란 문 옆에 작은 문이 하나있는데, 그곳은 내당이다.

 

내당은 실제 자손들이 살고계시는 터전이기때문에, 내당은 출입 금지이다.

 





 

 

 

 




















다음으로 이동한 '충효당'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시의 집은 아니다.

서애는 현재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

선생이 30여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다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을 보면 이곳이 내당.

 

출입금지.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건물.

 

너무너무 예뻐서 한동안 빤- 하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할아버지께서

 




"너 저기 올라가보고싶니?"

"?"

"너 저기 올라가보고싶지. 카메라 주고 얼른 올라가봐라.

내가 사진찍어줄께."

"? 올라가면 안된다고 써져있는데요..."

"괜찮다. 내가 여기 관리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마루를 살짝 밟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관리할아버지를 만난건 행운이었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께서 왼쪽으로 가면 '영모각'이라고

 

서애선생의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어있는 전시관이 있다며 얼른 구경하고 오라고 하셨다.






 





















그 유명한 징비록에 관한 설명도 보고 신나게 구경하고 나왔다.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또 등장하셨다.

 





"너 삼신당은 봤니?"

". 거기보고 양전당 보고 여기 온거였어요."

"그럼 내당은 들어가봤니?"

"?....? 내당은 출입금지여서..."

"에휴. 따라와라."

 





해서 보게된 내당.

 

사진도 엄청 찍어주시고,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사진한번 쭉 찍고 나가라고 하셔서, 사진을 찍었다.

 

(너무 당황해서 파노라마 기능을 잊고있었다.)






 




















가운데 신발 벗는 곳.

 

저기가 엘리자베스여왕이 신발을 벗고 올라간 곳이다.

 

저기서도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리고나서 나오는 길에

 

관리할아버지께 저 지푸기라기는 왜 기둥에 칭칭 동여맨거냐고 물어보았다.

 

집안에 큰 어른이 돌아가시면 하는 거라고 하셨다.

 

작은 어른이 돌아가시면 다른곳에서다가 묶는다 하셨다.

 

























본래 일정대로라면 작천고택,빈연정사,원지정사를 보러가야했지만,

 

관리할아버지께서 따라오라며 안내해주셨다.

 

걸음이 어찌나 빠르신지 나는 뛰어가야 맞출 수 있었다.

 

 

그러다 우뚝 서시더니

 

"너 류시원이 알지? 여기가 그 집이다. 얼른 문 앞에 서봐라. 사진 찍자."


























그리고 옆을 바라보면 구멍이 나있는 요상스레 생긴것이 있다.

 

여기에 손을 넣어보라해서 넣었더니 거기는 뱀이 나오는 곳이라 하셨다.

 

소리지르며 손을 냉큼 빼자 껄껄하며 웃으셨다.

 

농담이라 하셨다.

 

하...할아버지........




 

 

그리고나서 용도에 대해 추측성 설명을 해주셨는데,

 

마치 제주도 방언과 같은 할부지의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또 다시 한걸음 성큼성큼 가시더니 부용대에는 꼭 가야된다고 하셨다.

 

가는 길 중간에 만난 커플들한테 "부용대 갔다왔나? 좋제?"

 

여자 두명한테는 "야야, 느그 부용대 안가나? 안간다고? 아니다 꼭 가야한다. 따라와라."

 

그래서 그 여자 두분과 함께 쫄래쫄래 할부지 뒤를 따라갔다.

 

여행객들 안내를 해주시는 재미가 쏠쏠하신 듯 하였다.


























나룻배라 하여 줄을 연결하고, 그 줄을 당기면서 이동하거나, 노를 저어 가는건줄 알았는데,

 

멋진 모터가 있어서 부르릉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할부지께서 또 다시

 

"너 얼른 저 뱃머리에 서라. 사진찍어야 된다."

 

그래서 나룻배에 있는 6명 전원이 나를 바라보는 걸 느끼며 사진을 찍었다.

 



 

 

TIP.다른 후기를 보니 나룻배아저씨는 본인이 배를 띄우고 싶을때 띄운다고 하신다. 복불복 주의.

TIP.도선료 3000원은 꼭 현금으로 준비한다.





 

 





















나룻배에 내려 올려다본 부용대.


























고타야에서 알려준 부용대 구경 코스는 옥연정사 - 화천서원 - 부용대 였다.

 

갈림길에서 옥연정사로 올라가려하자

 

할부지께서 "거기로 부용대 가려하면 너무 힘들다. 나를 따라와라."

 

그래서 옥연정사는 나중에 올 생각을 하고 할부지를 따라갔다.

 

 

 



지나가는 길에 만난 '화천서원'


조선중기 퇴계 학문에서 경암 류운용(유성용 선생의 형님)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자

유림이 뜻을 모아 건립하여 묘우를 짓고 위패를 모셔서 학덕을 이어받고 추모하여 제향의 기능을 갖춘곳이다.

 



문이 잠겨있어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부용대 올라가는 길에 높은곳에서 내부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이 곳도 실제 거주하는 분이 계신건지, 아니면 관리자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정말 450보인지 수를 세면서 가고싶었지만

 

할부지 걸음이 너무 빨라 쫓아가는것만 생각했다.


























15분 정도 걸려 도착한 부용대.

 

할부지께서 또 다시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주셨다.

 

낙동강이 S 자로 휘몰아 가는 모습을 한눈에 보니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고타야 시티투어 차량은 부용대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다시 나룻배를 타고 돌아가려는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부용대 주차장을 향했다.

 

너무 더워서 5분정도 멍때리고 있다가 아까 보지못한 '옥연정사'가 생각나서 냉큼 움직였다.

 

 


서애 류성룡이 선조 19년에 지은 것으로, 조용히 거처할 곳으로 부용대 기슭에 터를 잡은 후

재력이 부족해 짓지 못하다가 승려 탄홍이 건축을 주관하고 물자를 지원해 주어 10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이 곳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을 집필한 곳이다.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깊어지는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이름도 옥연이라 하였다고 한다.

 

 

 

옥연정사도 문이 닫혀있어서 문틈사이로 구경을 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시간에 딱 맞춰서 오신 사장님의 봉고차를 타고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비가 후두두둑 장대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영주에 갔다가 단양을 가려고 했지만,


곧 장마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단양을 먼저 가기로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챙기고 안동역에서 단양으로 향했다.